농인의 방송접근권은 일상생활의 정보접근과 사회 참여를 위한 필수적인 권리다. 특히 수어방송은 청각장애인이 재난·정책·사회적 현안 등 주요 정보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매체다. 따라서 그 전달력과 품질은 평등한 정보접근과 의사소통 권리를 실현하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수어 방송의 전달력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공공기관의 무책임한 대응이 농인 사회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현재 수어통역사는 주로 개인 간 통역을 위한 목적으로 양성되고 있어, 대중 매체를 통해 수천 명에게 동시에 의미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방송 수어 통역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인 인력 양성 체계의 부실에서 비롯된 문제다. 따라서 방송 수어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어통역사 자격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며, 1급·2급과 같은 등급제 도입 등의 인력 양성 체계 개선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와 논의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2023년 방송 수어 및 자막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도 아직까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농인 사회로 하여금, 실제로 발생한 수어 오류와 시스템 미비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강한 의심을 낳게 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정책의 타당성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지 않는다면, 당사자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재단 관계자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다. 수어 관련 협회와 농아인 단체 간에 입장 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시청자미디어재단 소속 직원이 특정 수어통역사 단체로부터 공로패를 수여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정책 집행 기관이 특정 이해관계자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며, 농인의 주장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통역사의 관점을 중심으로 해석된다는 기존의 우려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한국농아인협회가 시청자미디어재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조차, 재단 측은 회의 장소를 갑작스럽게 변경하며 면담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청각장애로 인해 소통에서 배제되기 쉬운 농인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태도이며, 공공기관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소리를 듣기 어렵고, 설명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농인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정당한 요구를 전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접근권이 아니라, 실질적인 참여와 이해가 보장되는 구조로 반드시 전환되어야 한다. 방송접근 정책은 더 이상 일방적 결정이나 의례적 이행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농인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를 제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정보 전달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며, 공공기관은 이에 대해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한국농아인협회가 제기한 방송접근권 관련 문제에 대해 회피보다는 대화로 응답하길 바라며, 당사자와의 직접적 소통을 통해 책임 있는 해결의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25. 4. 23.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