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중심의 장애인 화장실, 인간의 존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장애인 화장실은 건강, 안전 등 인간의 존엄의 문제”

“공급자 중심의 설치가 아닌 당사자의 사용성 중심으로”

2026년 4월 22일(수)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당사자 중심의 장애인 화장실 기준 마련」을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개최되었다. 국민의힘 김예지·최보윤·이소희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국민의힘 조경태·박덕흠 의원도 현장에 참석하여, 장애인의 실제 필요에 부합하는 화장실 설치 기준이 법률로 제도화될 수 있도록 의정활동에 적극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토론회는 이규일 삼육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고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명예교수와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제를 담당하였다. 패널 토론에는 하석미 한국무장애관광연구소 대표,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유니버설디자인환경부 부장, 한상원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 조용문 (주)계림 이사, 이춘희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과장이 참여하였다. 토론에서는 당사자의 실제 경험, 정책적 방향, 법적 기준, 현장 설치 실태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의 의견이 제시되었다.

발제

고영준 교수는 「주요국의 장애인 화장실 설치 현황 및 시사점」을 주제로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의 사례를 비교·소개하였다. 고령자, 성소수자, 장루·요루 장애인, 보행 가능 장애인, 휠체어 사용자 등 다양한 이용자층을 고려한 화장실 유형을 검토하고, 회전 공간 확보, 가족화장실, 성중립화장실, 베드형 체인징 플레이스 토일릿 등 공간 설계 측면의 여러 형태를 함께 소개하였다. 위치 선정, 안내 표지판, 변기 손잡이 및 등받이 설치 기준 등 각국의 세부 편의 기준도 다루었다. 고 교수는 장애인 화장실 문제를 장애인만의 특수한 문제로 국한하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일반 공중화장실 전반의 문제로 확장하여 접근해야 한다는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였다.

두 번째 발제는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장애인 화장실, 당사자 중심 설계로의 전환」을 주제로 진행하였다. 김 소장은 장애 당사자로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현행 장애인 화장실의 구조적 문제를 강조했다. 특히 실증적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등받이 설치가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용자의 불편과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장애인 화장실의 문제를 시설의 설치 여부로만 판단하는 기존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김 소장은 당사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제도 설계의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가의 기준은 설치 그 자체가 아니라 당사자의 실질적 사용 가능성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패널 토론 1: 당사자 경험

첫 번째 패널로 나선 하석미 한국무장애관광연구센터 대표는 여행 작가로서 여행지에서 장애인 화장실 앞에 발길을 멈춰야 했던 현실적 경험을 토대로 발언하였다. 막혔을 때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자동 물내림 기능이 장애인에게 공포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용자가 원하는 시점에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수동 버튼 방식을 대안으로 제안하였다. 설치가 되어 있어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이용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현실도 함께 공유하였다. 기술과 설비는 당사자의 실제 사용 환경에 맞게 설계되고 조정되어야 하며, 그것이 가장 실효성 있는 접근이라는 것이 하 대표의 결론이었다.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권리적 관점에서 장애인 화장실 이용 경험을 공유하였다. 전 대표는 화장실에 접근할 때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고 말했다. 등받이의 재질·각도·높이·길이 등이 명확한 규정 없이 제각각으로 설치되고 있어, 장애인들은 화장실 이용 시 안전사고와 배변 실수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외출 전 물이나 커피를 의도적으로 삼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는 만성적인 탈수 및 신장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로, 장애인 화장실 문제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건강권 및 기본권의 영역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 대표는 2018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으로 등받이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듀오백 형태의 등받이가 보급되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체에 손상이 있는 지체장애인은 하의를 벗기 위해 좌우로 반복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등받이가 등을 고정하는 구조로 인해 하의를 내리지 못하거나 안전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독일의 상하로 이동 가능한 등받이, 스테인리스 연결고리, O자형 변기커버 등 실용적 사례를 소개하며, 현행 편의증진법 관련 조항이 당사자의 실제 사용 환경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패널 토론 2: 기준·법제도·설치

앞선 두 패널이 당사자의 직접 경험을 중심으로 발언하였다면, 이후의 토론은 제도와 기준, 그리고 설치 방식의 구조적 전환 필요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유니버설디자인환경부 부장은 유니버설디자인(UD), 사용성(Usability), 장애의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을 이론적 틀로 삼아 현행 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향후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현행 정책이 설치 대상 확대와 의무화에 집중되어 있으며, 표준적 사용자를 암묵적으로 휠체어 사용 장애인으로만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 문제라고 보았다. 다양한 사용자를 아우르는 사용성 시나리오 기반의 연구와 유연한 설계 기준의 도입이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다만 현 단계에서는 기본적인 적정 설치율 확대와 물리적 접근성 확보를 우선 과제로 두되, 점진적으로 사용성 요소를 보완해 나가는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라고 보았다.

한상원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UN「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RPD)을 인용하며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갔다. CRPD는 접근성 보장의 핵심 원리로 유니버설디자인을 명시하고, 협약 당사국에 최대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환경·프로그램·서비스를 설계하도록 촉진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유니버설디자인만으로는 구체적인 개인의 상황을 모두 포섭하는 데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합리적 편의 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을 통한 개별적·추가적 조정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이 두 원칙 모두를 제도적으로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당사자의 경험이 상시적으로 제도에 반영되는 구조, 그리고 장애 당사자·활동가·전문가·정부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다학제적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였다.

조용문 (주)계림 이사는 제조 현장의 시각에서 세 가지 제도 개선 과제를 짚었다. 첫째, BF 인증 우수 등급의 경우 자동 센서와 벽면 누름 버튼 중 하나만 설치해도 인증을 받을 수 있어 대부분의 공공시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자동 센서만을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 센서는 장애인의 자세나 각도에 따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때 버튼이 없으면 변기 뒤쪽의 수동 레버를 직접 조작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 낙상 등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수 등급을 폐지하고 두 방식의 동시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둘째, 장애인용 세면대의 규격 기준이 KS 규격과 BF 인증 기준 사이에 서로 달라 실제 공공시설에는 더 큰 세면대가 설치되고 휠체어가 세면대 아래로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두 기준을 일치시키는 것만으로도 별도 예산 없이 이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 셋째, 변기 뒤 공간 확보가 쉬운 직수식 양변기는 국내 규격 미비로 공공시설에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중국은 이미 관련 규격을 갖추고 있는 만큼 국내 규격 제정이 시급하다. 세 가지 모두 새로운 기술이나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 간 기준을 맞추는 문제다. 제도가 바뀌어야 현장도 바뀐다는 것이 조 이사의 결론이었다.

보건복지부 답변 및 향후 과제

이춘희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다고 평가하며, 현재 복지부가 준비 중인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듀오백 등받이로 인한 낙상 사고, 자동 물내림 장치의 오작동, 수동 버튼의 접근 불편 등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들을 언급하며, 이성 돌봄 종사자의 화장실 이용 문제 해소를 위한 독립형 다목적 화장실 신설 요구도 현재 검토 중임을 밝혔다. 현행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대변기·소변기에 대한 기본 규정만 두고 있을 뿐 등받이 형태나 물내림 버튼에 관한 세부 기준이 없으며, 2종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장애인 화장실 설치 의무 자체가 없다는 현실도 지적하였다. 2023년 기준 전국 장애인 화장실의 적정 설치율이 73%에 그치는 만큼 사후 관리와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제6차 장애인편의증진 국가 종합 5개년 계획을 통해 장애인 화장실 대변기 등받이 표준 제품 개발 및 세부 설치 기준 마련을 추진하고 있으며, 포용적 건축 환경 조성을 위한 연구도 병행 중이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장애인 화장실의 문제가 편의시설 설치율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안전·존엄이라는 기본권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당사자의 경험, 법·제도적 기준, 제조 현장의 현실이 한자리에서 교차한 만큼 이번 논의가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으로 이어져, 공급자 중심의 설치에서 당사자 중심의 사용으로 전환되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넘어야 할 벽은 하나가 아니다. 건축 기준과 BF 인증은 국토교통부, KS 규격은 산업통상자원부, 공중화장실 관리는 행정안전부의 소관으로, 권한이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하나의 부처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범부처 차원의 통합적 접근이 선택이 아닌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

※ 온라인 자료집: https://forms.gle/DMsP9pdMoAeA3dEd9

※ 간담회 녹화영상: https://buly.kr/DEb5P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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