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공공정책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설계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장애인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정책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장애인의 권리와 접근성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구조적인 배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겪는 정책적 배제는 단편적인 실수나 사후 조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애초에 정책 설계와 예산 편성 단계에서 장애 관점이 제도적으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은 단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기존 정책 체계를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필요성에 따라 4월 25일(금) 이룸센터 누리홀에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국회의원 최보윤, 국회의원 서미화가 공동 주최한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 도입을 위한 정책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 제도의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제도의 개념과 필요성을 짚고, 국내외 제도 사례를 검토하며, 한국 사회에의 적용 가능성과 실행 전략을 모색하고자 하였습니다.
세미나는 김동호 장애주류화정책포럼 대표가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발표 주제로는 장애영향평가의 개념 및 해외 사례, 성별영향평가 및 성인지예산 제도의 운영 경험과 시사점, 국내 도입을 위한 법률적·제도적 과제, 실행 방안을 중심으로 한 정책 적용 전략, 정부의 추진계획과 향후 과제 등이 다뤄졌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 제도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제도 도입을 위한 법적 기반과 행정적 실행 방안을 함께 제시한 자리였습니다.

● 장민영 연구위원(한국법제연구원) 「장애영향평가의 개념과 글로벌 규범 동향」
장민영 연구위원은 장애영향평가를 “정책이나 제도가 장애인의 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전 또는 사후에 분석하는 제도”로 정의하고, 해외 주요 국가들의 제도화 사례를 중심으로 그 필요성과 실행방식을 소개했습니다.
영국은 2005년 개정된 장애차별법을 통해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장애평등계획(DES)’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 계획에는 각 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의 장애영향을 평가하는 절차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미이행 시에는 장애권리위원회가 시정명령이나 법원 명령을 통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구조도 갖추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민간 부문까지 포함하는 인권영향평가 체계를 운영하며, 그 안에 장애 요소를 통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장 연구위원은 이러한 국제 사례를 통해 한국 역시 제도 도입 시 법률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중앙정부를 시작으로 점진적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아울러 단순한 선언적 조항이 아니라,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평가 절차, 피드백 체계, 당사자 참여 등이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이택면 선임연구위원(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예산·성별영향평가의 성과와 한계: 장애인지예산·장애영향평가 제도 도입을 위한 함의」
이택면 선임연구위원은 성인지예산과 성별영향평가 제도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 도입을 위한 구조적 시사점을 도출했습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성인지예산이 단지 여성 대상 예산이 아니라, 정책의 성평등 영향을 분석해 예산 편성과정에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와 같은 방식이 장애 영역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인지예산이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지침에 따라 부처별로 성인지예산서를 작성·제출하고, 집행 후에는 ‘성인지결산서’를 통해 평가되는 구조임을 설명하며, 이처럼 예산 편성과 집행 전 과정을 연결하는 시스템 설계가 장애인지예산에도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성별영향평가와 성인지예산은 별개의 제도로 운영되지만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하며,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도 마찬가지로 연계형 또는 분리형 모델을 선택하여 설계할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해외 사례로는 캐나다의 GBA+ 제도를 언급하며, 젠더뿐 아니라 장애, 소득, 지역 등 다양한 요인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영향분석 체계가 운영되고 있음을 소개했습니다. 장애 관련 제도도 단독 제도로만 접근하기보다는, 다른 사회적 요인과 연계한 포괄적 분석 체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김경란 본부장(한국장애인개발원) 「국내 장애영향평가·장애인지예산 도입의 필요성과 법률적, 제도적 과제」
김경란 본부장은 국내 제도 도입을 준비하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실질적 쟁점들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유사 영향평가 제도의 도입·운영 경험을 통해 확인된 반복적 한계를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 도입 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다루는 대상은 단지 장애인 관련 정책이 아니라, 전체 법령과 계획, 사업 속에 장애 관점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하며, 정책 대상의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제도의 실효성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별·고용·아동 영향평가 제도의 사례를 통해 나타난 문제로는 지표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해 평가의 실효성이 낮은 점, 사업 이해도가 낮은 평가 주체에 의한 자체평가의 한계, 교육과 전달체계의 전문성 부족 등을 들었으며, 장애영향평가 도입 시 이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명확한 평가대상 기준과 시범사업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또한 장애의 특성상 ‘유형’과 ‘정도’에 따른 고려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보다 정교한 평가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가의 법적 근거가 단순 선언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법률 내에 전달체계와 교육, 평가주체 등을 포함한 실질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김동기 교수(목원대학교) 「장애포괄적 정책 수립을 위한 장애영향평가·장애인지예산 적용 방안」
김동기 교수는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의 제도적 정착을 위해 필요한 실행 구조와 설계 원칙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그는 장애 관점을 정책에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령 제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행체계와 주체별 역할 정립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그는 성인지 제도의 도입과정에서 성과를 낸 기반 요소들을 참고해, 장애 분야에도 통계 구축, 정책 매뉴얼화, 교육과정 개발, 평가 및 환류 체계 마련 등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를 ‘장애주류화 체계의 기반’이라 설명하며, 형식적 제도 도입이 아니라 실제 정책 과정 속에서 작동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그는 법령 내 규정만으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행정부처 및 지방정부가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조직 내 실무체계 마련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성재경 과장(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장애영향평가 제도 도입 추진단의 역할과 향후 계획」
성재경 과장은 정부가 현재 장애영향평가 제도 도입을 위한 TF를 구성해 기초연구를 완료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 제도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성 과장은 장애영향평가가 사후적 보완이 아닌 사전적이고 포괄적인 정책 조정 장치가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사전 고려가 없었던 사례(휴게시간 강화 정책에 따른 장애인활동지원 영향)를 소개하며, 향후 유사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실제 정책 영향 분석이 가능하려면 장애 분리 통계, 장애유형 및 정도 반영 기준 등이 구체화돼야 하며, 평가대상 범위 설정과 행정비용 산정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불어 제도 도입 초기에는 전면 도입보다 시범사업을 통해 평가 체계, 평가자 교육, 전달체계 모델을 정립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분야별 심층 연구의 필요성과 함께 예산 확보 및 국회의 협조도 요청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단순히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이 실제 정책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자리였습니다. 발표자들은 모두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법적 근거, 정교한 적용 대상 설정, 실무자 교육과 전달체계 정비, 통계 기반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제도 도입의 방식 역시 전면 시행보다는 시범사업을 통한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며,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기존 영향평가 제도의 한계를 면밀히 분석해 설계에 반영해야 함이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장애인의 특성과 정책 대상의 복잡성을 반영한 맞춤형 평가체계 개발이 핵심 과제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번 논의는 장애인의 권리를 제도 속에 구조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첫걸음이자, 향후 입법과 예산, 행정 실무 전반에 있어 구체적인 설계 논의를 확장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향후 제도화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세미나에서 제시된 실천적 제안들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각계의 협력과 실질적인 후속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장애영향평가와 장애인지예산 도입을 위한 정책세미나’ 영상으로 다시보기 : https://youtu.be/ZUHwSm82x0k?si=A9OYnbKmf64G_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