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학회 2026년 춘계학술대회

“AI 시대의 장애: 기술, 재현, 그리고 불평등”

기술이 발전할수록 세상은 더 평등해지는가.


지난 5월 15일(금),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는 2026년 한국장애학회 춘계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국장애학회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함께 마련한 이번 춘계학술대회의 주제는 “AI 시대의 장애: 기술, 재현, 그리고 불평등”. 인공지능이 일상을 빠르게 재편하는 지금, 장애는 그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정면으로 묻는 자리였다.

강민희 회장은 개회사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AI를 검색창에 넣고 장애를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것들이 있다. 시술, 치료법, 극복 사례. 기술이 발전할수록 “왜 아직도 장애를 달고 사느냐”는 물음이 더 거세질지도 모른다고. 오늘 학술대회는 바로 그 물음에 맞서는 자리였다.


오전 세션 — 신진연구자 및 자유발표

오전에는 총 8편의 발표가 이룸홀과 회의실 두 곳에서 동시에 펼쳐졌다. 청각장애인 노동자가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겪는 차별의 구조, 정신건강 생존자 연구자가 지식 생산의 주체로 서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달고 세상과 맞서온 근육장애인의 삶, 로크의 철학 안에 새겨진 장애인 타자화의 계보까지. 신진연구자들의 날 선 문제의식이 이어졌다.

오후 1세션 — 기조발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로서의 몸과 감각 — 장애와 기술”
발제: 김초엽 (SF 작가)

오후 세션의 문을 연 것은 SF 작가 김초엽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작가이자 청각장애 당사자이기도 한 김초엽은, 『사이보그가 되다』를 출간한 지 5년 만에 다시 이 주제 앞에 섰다. 발제는 익숙한 두 가지 서사를 모두 거절하는 데서 시작했다. ‘기술이 장애인을 구원한다’는 낙관도, ‘기술은 장애인을 억압한다’는 단순한 비판도 아닌, 그 복잡한 지점을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김초엽이 먼저 꺼낸 개념은 테크노에이블리즘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 장애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위험한 이유는, 지금 이 순간 장애인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을 계속 미루게 만들기 때문이다. SKT가 개발한 AI 기반 발달장애인 행동 감지 시스템 ‘CareVia’를 사례로 들며, “따뜻한 AI”라는 이름 아래 당사자의 자기자극행동을 ‘도전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비판했다.

그런데 발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초엽이 직접 경험한 인공와우 이야기는 훨씬 입체적이었다. 처음 기기를 켰을 때 들린 소리는 “UFO를 타고 내려온 외계인이 알 수 없는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의료 기관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활성화 영상과는 전혀 달랐다. 김초엽이 의지한 것은 인공와우 사용자의 실제 경험이었다. 당사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음악 재활 팁을 공유하고, 때로는 직접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는 그 공간. 이것이 바로 김초엽이 소개한 크립 테크노사이언스의 실제 모습이다. 장애 당사자가 기술의 수혜자가 아니라 지식 생산자이자 틈새를 발굴하는 주체로 서는 실천들이다.

발제에 이어 세 명의 토론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 논의를 밀고 나갔다.

과학기술학을 연구하는 강미량(카이스트)은 기술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되고 있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렇기에 비판이 가능하고, 개입이 가능하다고. 인공와우를 둘러싼 논쟁이 “반대냐 찬성이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실제 삶 속의 복잡한 경험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짚으며, “4차산업혁명에도 장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운동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낸 것처럼, 기술의 설계 과정에도 그런 싸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김상희는 AAC로 직접 발표를 진행하며 보조기기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야기했다. 전동휠체어는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주었고, AAC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김상희는 분명히 말했다. 기술이 있어도 사회가 기다려주지 않으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고,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전동휠체어도 소용없다고. “바뀌어야 하는 것은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윤은호(인천대)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꺼냈다. 오늘 이야기한 기술들 — 인공와우, 전동휠체어, 보조기기 — 은 대부분 신체장애인의 이야기라는 것. 정신적 장애인에게 같은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발달장애인에게 제공되는 AI 기술들은 당사자의 의향과 무관하게 외부에서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배회감지기는 사생활을 추적하고, ‘도전적 행동 극복’ AI는 자기자극행동을 제거한다. 윤은호는 정부의 AI 행동계획이 어떻게 강제 입원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시나리오로 보여주며, “정신적 장애인은 기술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오후 2세션 — 장애와 기술 논의의 적용과 비판

발표 1: “AI는 누구를 대표하는가 — 알고리즘적 에이블리즘과 누적되는 고립 구조”
발표자: 김지혜 (성균관대학교)

AI는 편향 없는 기계일까. 김지혜는 이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개발자의 나쁜 의도 때문이 아니다. 표준적인 개발 절차를 성실하게 따르기만 해도 배제는 구조적으로 만들어진다.

김지혜는 AI가 만들어지는 네 단계를 차례로 해부했다.

데이터 수집 단계. 데이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배제되어 온 장애인의 삶은 데이터 자체에서 부재하거나, 디지털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일부 장애인만의 경험이 전체인 것처럼 수집된다. ‘접근성 데이터셋’이라고 불리는 것들조차 백인·고학력·특정 연령대가 과표집된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라벨링 단계. 데이터에 의미를 붙이는 과정이다. 의견이 갈릴 때 알고리즘은 다수가 동의한 답을 정답으로 채택한다. 에이블리즘 발언의 위해성을 평가한 연구에서, 장애 당사자가 가장 높게 평가한 반면 AI 모델은 비장애인과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비장애인의 판단이 정답으로 학습된 결과다.

모델링 단계.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학습하는 구조에서, 장애인의 비전형적인 표현 방식은 평균에 수렴해야 할 편차로 처리된다. 97%의 정확도라는 숫자 뒤에 특정 집단의 실패가 조용히 묻힌다.

출력·배치 단계.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가 복지·채용·의료 등 실제 제도 안에 들어간다. 영국과 스웨덴의 복지 급여 알고리즘 사례에서 당사자들은 기계가 만든 기준 앞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 수급자는 “왜 내가 기계의 의심을 반증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자살을 시도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문제들이 단계별로 누적·증폭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포착되지 못한 경험은 다음 단계에서 복원되지 못하고, 생성형 AI 시대에는 AI의 편향된 출력이 다시 다음 모델의 학습 데이터로 들어가는 재귀적 고립 구조가 만들어진다. 김지혜의 결론은 명확했다. 이것은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누가 정상성을 정의하는가. 데이터 설계의 권한, 성공을 정의하는 목적함수의 재설정, 배포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장애 당사자에게 있어야 한다.

토론에서 남지현(서울연구원)은 기술의 미세한 장벽에 주목했다. 대놓고 차별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장벽은 훨씬 조용하고 정교하다. 층수를 입력해야 작동하는 엘리베이터, 터치로 온도를 미세 조정해야 하는 스마트 세면대. 기술이 세밀해질수록 장벽도 세밀해진다. 이재민(비마이너)은 알고리즘 에이블리즘이 제도와 만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해외 사례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AI 채용 시스템 차별 소송, 호주의 장애인 개인예산제 알고리즘 도입 논란. 특히 호주 정부가 알고리즘을 비공개로 하면서 이의 신청도 다시 AI에게 돌리는 구조는, 제도의 의도가 기술의 블랙박스 안에 은폐되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발표 2: “장애예술과 동시대 기술 — 기술해결주의 비판과 다른 관계의 모색”
발표자: 전유진 (여성을 위한 기술랩)

전유진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졌다. “모두를 위한 기술”이라는 말, 정말 믿어도 될까.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똑같은 말이 있었다. 세계 인구의 40%가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던 시절에도 “모두를 연결한다”고 했다. 그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AI가 등장하며 오히려 벌어졌다. 전유진은 이것을 기술의 단일성 문제로 짚었다. 특정 기술이 보편화되어 공기처럼 편재할 때, 그것을 쓰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가 된다. 인터넷이 그랬고, 지금 AI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이때 가장 끝까지 소외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역사가 이미 보여주었다.

‘제너럴(General) AI’라는 이름도 그냥 붙인 것이 아니라고 전유진은 말했다. 일반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그 범주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자극한다. 분류의 언어는 이렇게 작동한다. 그리고 이 언어가 권력이 된다.

그렇다면 장애예술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유진의 답은 전유(appropriation)다.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관점으로 기술을 비틀고 다시 쓰는 것. 청각장애 당사자이면서 사운드 아티스트인 크리스틴 선킴은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소리 예술을”이라는 상상 자체를 깨뜨렸다. AI의 취약성을 청각장애인의 경험과 겹쳐 읽은 김은설 작가의 작품은, 기술의 불완전성을 가장 예리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위치에 장애예술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성을 위한 기술랩이 개발한 진동 악기 ‘햅킥(HAPKICK)’은 소리가 아닌 촉각으로 리듬을 만드는 실험이었다. 워크숍에서 만난 참가자들 중 상당수가 “내가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장수혜(한양대학교)는 전유의 가능성에 공감하면서도 하나의 경고를 더했다. 저항적인 실천도 제도 안으로 흡수되면 형식적인 체크리스트가 되어버린다. 포용적, 배리어프리라는 말이 그랬던 것처럼. 전유가 전유로 남으려면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집단적 기반과 생태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생태계를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현장의 예술 매개자들이 지닌 관계적 역량이라고 장수혜는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인프라가 지금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것도 함께.


마치며

AI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를 학습하고, 더 빠르고 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 사회를 재생산한다. 그 사회가 누군가를 배제해왔다면, AI도 배제한다. 다만 훨씬 정교하게.

이날의 이야기는 그러나 비관으로 끝나지 않았다. 포럼에서 서로의 재활 경험을 나누는 인공와우 사용자들,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들, AI 파이프라인의 설계 기준을 바꾸자고 외치는 연구자들. 기술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안의 틈새를 파고들어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온 이들의 이야기가 이 자리를 채웠다.

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 일.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지금 장애학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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