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더라도 소비자로서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 도입부터 할 것인가, 충분한 선택 가능한 제반 환경 구축부터 해야 하는가?
기시감이 드는 논의 대목입니다. 2000년대 초반 자립생활운동을 시작하며 장애인의 자기결정이 당장 실현가능한 것인지,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립생활이 가능한지 치열한 논의가 있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여러 입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개인예산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했고, 내년부터 2년간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6월부터 모의적용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6월 14일(수) 국회의원 최혜영과 함께 ‘개인예산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가’ 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제도의 본질인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개인예산제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점검해보기 위함입니다.
먼저 발제를 맡은 허준기 연구원(광주복지연구원)은 제도의 행위자를 중심으로 개인예산제 도입이 자기결정권 강화라는 정책 의도를 실현할 수 있을지 분석해보았는데요. 장애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제도로 개인예산제를 통해 시민권이 발현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같이 장애인서비스의 종류와 규모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프라나 자본의 격차를 해소해야 하고 모의적용사업을 통해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토론자로 참여한 최선호 정책팀장(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은 한마디로 생일잔치에 초대했는데 밥 값은 초대받은 사람이 지불하는 꼴이라며 빗대어 표현했는데요. 모의적용사업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활동지원급여를 활용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부당하다는 것이고요. 개인예산제가 도입되면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문서작업, 정보검색, 이동지원같이 기존 제도의 빈 틈을 메꾸는 방식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선자 정책부위원장(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한 방안 모색을 주문했는데요. 당사자와 보호자가 생각이 다르거나 발달장애인의 생각을 어떻게 사정하고 평가할 것인지, 훈련된 전문가와 충분한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연윤실 정책국장(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기조를 우려하면서 자기결정권 강화를 위해 개인예산제만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비스별 고유성을 인정한 사정과 개인에게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총량이 보장되는 예산 확보가 먼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윤재영 교수(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지체장애인과 인지적 장애인의 선택권은 구분해서 접근해야 하며, 사람들의 열망이나 욕구, 개별 상황에 대한 섬세하고 정교한 지원체계가 마련된 “사람중심 실천”이 정교하게 결합돼야 자기결정권 강화라는 정책의도가 개인예산제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모의적용사업의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이한나 부연구위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발제자와 토론자가 지적한 모의적용사업의 우려점들을 대부분 인정하면서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장애인복지 총량 확대가 중요하며, 시범사업 단계에서는 지금의 지적들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경일 과장(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은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만들어갈지에 대한 여러 걱정들이 있지만 모의적용사업과 2년의 시범사업 기간동안 법과 시행령을 만들고 2026년 본사업이 시행되기 전까지 장애인단체와 전문가와 지속적인 의견을 교환하며 보완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충분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선택의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의 발걸음을 떼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요? 과정만 요란하고 당사자가 체감할 수 없는 정책 변화는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입니다.
* 작성자 : 남궁 은 책임(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