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 최용기 회장

내 나이 서른사고로 차별과 인권 없는 세상을 마주하다

그는 30년을 비장애인으로 살았지만, 1995년 운전 중 커브 길에서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인해 경추신경이 크게 손상되어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중증장애인이 된 후 그간 자신이 비장애인으로 살 때 느끼지 못했던 이동, 교육, 노동 등에서 차별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이것은 곧 장애인의 문제가 내 문제임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더욱 절실해지게 만들었다.

장애인이라도 모두가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투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 장애인 모두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 나와야만 했다. 무엇보다 ‘장애인 누구나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큰 바람이 그를 투쟁 현장으로 이끌었다.

활동지원의 좁은 문은 열었지만 그는 여전히 바쁘다

20년이 넘도록 인권 투쟁을 하면서 그는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2005년 경남 함양에서 한 중증장애인이 집 수도관이 터져 동사하는 참사가 일어난 적 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장애인 문제 해결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 생각하며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투쟁했다.

변화를 일으키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장애정도가 심한 중증장애인으로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데,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으로 인해 투쟁 현장에서 끝까지 투쟁하지 못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예산과 형평성의 문제로 몰고 가며 지원을 중단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이럴수록 그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 현장에서 앞장섰다.

제정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필요한 만큼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과거의 법 제정이 활동지원서비스의 초석이었다면, 이제는 투쟁을 통해 장애인 모두가 필요한 만큼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장애인이 어떻게 혼자 살 수 있나요?’

활동지원서비스 확대를 위해 그가 특히나 노력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아무리 중증장애인이라 하더라도 활동지원서비스를 통해 얼마든지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보통 성인이 되면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장애인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독립,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중증장애인이 혼자 살 수 있어?”, “중증장애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어떻게 무슨 일을 할 수 있어?” 등 장애인의 입장과 관점이 아닌 편견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본다. 장애인 역시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그는 이러한 생각이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한다.

‘자립누구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그는 장애인도 사람이며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사람다운 삶’, 즉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애인은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이동, 교육, 노동 등에서 수많은 차별을 당하며 기본권조차 배제당하며 살고 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으로 출근 시간 때 지하철이 멈추고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한 적이 있는지요?”

“그럴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동하는데 버스를 1시간씩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이 같은 질문들을 보며 그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삶과 생활도 중요하고, 서로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항상 상기하길 바라고 있다. 어떤 장애를 가졌더라도 자기 삶의 주체로서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립생활이라고 말하는 최용기 회장, 앞으로도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해 투쟁 현장에 앞장서길 굳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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