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주의”란 말은 다원적 방법에 의해 접근 되어져야할 사안들이 한 가지 방법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그 방법에 의해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오직 장애등급 하나의 기준에 의해 장애인복지서비스의 대상과 방법을 정하는 편의적 행정 또한 장애등급 만능주의라 볼 수 있다.
모든 만능주의에는 많은 문제점이 따르듯, 장애등급 만능주의 역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장애등급심사가 만능자격시험 인가?
현재의 장애등급은 신체 결손정도와 신체 기능성 등의 의학적 판단에만 기초하여 산정된다.
그럼에도 장애등급은 모든 사회적 서비스의 적격성 여부를 측정하는 만능 리트머스지처럼 남용되고 있다. 각종 사회 서비스 수급의 적격성을 가리는 데 있어서 장애등급이 일정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장애 개개인의 소득, 직업, 보유재능 등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서비스 수급대상에서 제외 되어 버린다.
여기서 주목해 볼 대목은 사회 서비스 적격여부를 가리는 유일한 기준인 의학적 장애 판정이 정확도나 엄정함 면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장애진단서와 진료기록이 서로 상이함으로 인한 판정 오류가 전체 조정 사례 중의 약 74.3%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는 장애등급 판정 과정이 보다 전문화 되고 개선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논리에서 나온 언급이지만, 의학적 진료기록에 의한 장애진단의 모호함과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보편적 사회 서비스에 드는 비용의 경감과 개개인별 차등화를 위해 등급제는 참으로 편리한 행정 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활동보조서비스, 장애연금을 비롯하여 향후 도입될 장기요양 서비스와 같은 개별화된 서비스에 장애등급을 일괄적 잣대로 삼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 서비스의 대상자를 정함에 있어 장애 개개인의 생활정도와 개별욕구를 무시하고 의학적 기준인 장애등급 만으로 대상자를 결정 하는 것은 정확함에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서비스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중중장애인과 경계선 급의 장애인 들은 대상자로 판정 받을 기회조차 없는 불합리함도 안고 있는 문제이다.
장애등급 만능주의는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정부의 의도대로 엄격한 장애등급 판정을 통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보다 많은 증증 장애인들에게 보다 많은 사회적 혜택이 가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장애등급 기준에 근간한 장애인복지서비스 행정을 하는 현재의 방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장애 등급 기준에 의한 장애인복지행정은 오직 의사가 사회적 서비스 수급 요건을 결정하고, 오직 의사만이 장애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전형적인 옛 의료모델적 접근방식 이기 때문 이다.
이제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은 의료모델에서 자립생활 모델로 바뀌어가는 추세다.
이에 발맞춰 우리 정부는 의학적 관점의 장애등급 만능행정을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한다.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여러 전달체계와 관련 전문 인력들을 동원 하고 장애인당사자의 욕구, 근로능력, 사회활동 등을 반영하여 장애인 각자에게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를 판별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할 것이다.
장애등급재심사의 명분과 허상
정부는 엄정한 장애등급재판정을 통해 4만 명에 이르는 허위 등급 장애인의 사례를 적발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장애등급하락으로 인해 사회 서비스 수급 대상에서 탈락된 장애인들에 대한 구제 방안이나, 신규 수급자 발굴 방안 등에 대한 후속 계획은 현재까지 구체화 된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장애등급하락을 우려해 장애연금 신청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상당 수(신규연금 신청대상자의 절반 수준) 추정되는 등 새로운 장애인복지제도의 정착에 어려움만 가중되고 있는 실정 이다.
단기 대책과 장기과제
이렇듯 많은 부작용 요소를 안고 있는 현행의 장애등급 판정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당장의 시급한 몇 가지 대책을 아래와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첫째, 최소한 활동보조서비스나 장애연금에 한하여서 라도 장애등급과는 상관없이 각 서비스별 별도의 기준에 의해 서비스 대상 여부가 판별되어 지도록 해야 한다.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 별도의 수급 자격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긴 하나 장애1등급 이상이라는 단서가 있기 때문에 장애등급 재심사결과가 1등급이라도 하락하면 활동보조서비스 필요지수를 충족시키더라도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게 된다.
둘째, 뇌병변 장애등급 판별 기준인 수정바델지수 또한 등급 기준점을 대폭 수정하여 대다수의 장애등급 하락을 방지해야 한다. 현행 수정바델지수 기준점에 의하면 식사와 용변처리가 가능하기만 하면 언어장애나 마비의 경중과는 관계없이 1급을 받을 수 없고, 지체장애 중 상하지 기능장애 1급은 뇌병변 장애 2~3급에 해당 되어 유형별 형평성 면에서도 크게 어긋나 있다.
셋째, 보다 강화된 심사기준으로 장애등급을 판별하는 현행 장애등급 판정 제도를 철회하고, 기존의 의학검사 자료와 기준 내에서 명백히 허위로 장애등급이 책정된 경우만 조사하는 수준까지만 행해져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현행 장애등급제에 근거한 장애등급 만능행정은 분명한 레드카드감 이다. 장애등급만으로 사회적 서비스 수급 자격이 판단되어져선 안되며장애인 각자가 요구하는 서비스 위주로 적격성을 판단하는 판정체계의 구축이 절실하다.
새로운 장애판정 제도의 도입과 사회 서비스 종류별 장애판정체계 구축을 위해 정부 관계자, 장애인 복지 전문가, 의학계, 장애계 시민사회가 중지를 모아 나갈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2010년 7월 19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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