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인권위, 새지폐 진정기각

[논 평]
국가인권위, 시각장애인 지폐 식별 못해도 차별 아니다?
– 시각장애인 76,2% 지폐 액면가 구별 못해 손해 본 경험 있어 –

국가인권위원회가 또 다시 장애인 감수성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새롭게 발행되는 지폐를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어, 인권위원회에 낸 차별 진정을 관계기관인 한국은행의 입장만 견지하여 ‘기술상 한계’라는 이유로 기각(인권위원회 결정문, 2007. 첨부)했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약속에 의해 공동으로 물적 가치를 나누는 도구인 지폐를 유일하게 시각장애인만 쓰지 못하도록 배제한 것임에도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새롭게 발행되는 지폐를 구분하지 못하여 손해 본 경험을 가진 시각장애인이 76.2%(전남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사, 2007)나 된다. 이를 근거로 전남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남지소, 전국시각장애인청년연합, 희망제작소 등이 지난 2월 3일, 2007년 1월 발행된 새 지폐의 액면가 구별용 점자가 묵자 방식으로 인쇄되어 시각장애인들이 이용상의 불편 부당함을 호소하자,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현행 지폐 발행(점자요판인쇄)방식 외에 뚜렷한 개선책이 없다는 피진정인 한국은행의 주장만을 인정, ‘우리나라 지폐에 적용되고 있는 액면가 식별방법이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는 현재 피진정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의 한계에 따른 것으로서, 합리적 이유 없이 시각장애인의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수 없음으로 진정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그간 시각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그 어떤 정책수립이나 검증 한번 없이 지폐를 발행해 옴으로서, 시각장애인의 지폐식별방식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한국은행의 주장만을 고려 한 채, 가장 보편적인 환경권으로 보장되어야 할 시각장애인의 경제활동 문제는 간과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차별감수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

알고 보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차별감수성 문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6년 3월, 볼라드에 의해 잦은 사고를 당하는 한 시각장애인이 볼라드의 제거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보행환경 확보를 요구한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규격에 맞지 않는 구조물이었음에도 법적인 설치근거만을 앞세워, 그로 인해 파생되고 있는 장애인의 보행환경문제는 외면, 차별이 아니라고 결정한 바 있다. 또 2006년 9월, 비장애인 화장실은 남녀를 구분해 설치하고,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 공용으로 설치해도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60년대 시골 푸세식화장실 수준의 인권감수성을 들어낸 바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 및 병력차별 시정 국가정책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현황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장애차별 진정 403건 중 일반종결의 기각이나 각하가 54.9%로 대부분의 진정이 차별사례로 인정받지 못하고 생활 속 평범한 일상사로 취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내에 장애차별감수성을 가진 인적자원들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며, 장애차별 해소를 위한 특단의 조치 없이 장애인권 감수성이 희박한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원들에게 계속 내맡겨질 경우 오히려 차별 가해자들에게 차별이 아님을 정당화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내년 시행될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이 사문화되지 않고 살아 움직임으로써 장애차별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해서는 이 법률 시행 주체인 국가인권위원회 내 장애차별팀·소위원회·전원위원회 등에 장애차별 감수성을 가진 장애당사자의 30%이상이 반드시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폐 차별 기각을 즉각 철회하고, 재심하여, 시각장애인의 지폐 사용에 관한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라!

2007. 7. 5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남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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