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게 문화예술이 가진 고유한 가치입니다.그런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예술에 참여할 권리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게 장애예술인들이 처한 작금의 현실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 및 분석연구(2018)’에 따르면,장애예술인의 평균 활동 기간은7.6년에 불과했으며,예술 활동 관련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도62%에 달했습니다.예술 활동의 발표 기회가 충분한가 묻는 질문에도 약41%의 장애 예술인이‘부족하다’고 대답, ‘충분하다’는 응답(20%)보다 두 배나 높았고요.
제4회 장애인 아고라 현장 사진(복지TV스튜디오)
그래서 올해 마지막 장애인 아고라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에 몸담고 있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지난9일, “경계를 허무는 예술,모두를 위한 무대”라는 타이틀로 사전 녹화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아고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특별한 게스트들이 함께 했습니다.네 주인공이 모여 왜 문화예술분야에 몸담게 되었는지부터 장애예술인으로서 갖게 된 여러 고민,나아가 다양성이 보장되는 문화예술 현장이 되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 지 나누었습니다.
김재은 단장(극단‘라하프’)
“자폐성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고 꿈을 말하는,이게 바로‘문화예술’이 가진 힘이죠!
스스로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그때부터 변화는 시작됩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본인 자녀를 포함해 총13명의 발달장애·비장애 단원으로 구성된 뮤지컬 극단‘라하프’의 김재은 단장,처음에 발달장애부모들 중심으로 모 대학교 소속 장애인부모회를 주축으로 발달장애학생들을 위한 여름방학용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극단이 이제는 세종문화회관,평창 패럴림픽 폐막식 등 국내 유수의 무대에 설만큼 크게 성장했다고 자부심을 전했습니다.활동 반경이 넓어진 만큼 단원들도 함께 성장했으며,이제는 극단 활동이 이들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큰 의미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일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자폐성 장애를 가진 단원들이 극단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전하며 이 모든 것이 문화예술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만 예전에 비해 장애예술인을 대하는 대중의 인식이 많이 좋아진 반면 제도적인 뒷받침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꼬집었습니다.자신들과 같은 장애예술단체들이 더 많이,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소셜벤처를 인큐베이팅하고 또 어느 정도 성장한 회사는 엑셀러레이팅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특히 대부분 예술단체들이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힘든 상황임을 전하며 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들이 가진 편견이 먼저 깨져야 한다고 전했습니다.가령 발달장애인 스스로“나 같은 장애를 가진 뮤지컬 배우를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죠?”혹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 스스로“그거 배워서 뭐해요.우리 애는 그런 거 배워도 못해요.”라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재능을 펼치거나 관심을 가질 기회조차 포기해버리는 부정적 인식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습니다.김재은 단장은 발달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먼저“우리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아울러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문화예술에 참여할 기회를 더 많이 열어주어 자신들과 같은 변화를 체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김보경 학생(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대중이 가진 편견을 깨려면 우리(장애예술인)를 세상에 더 많이 알려야 해요.
그런데 무대에 설 기회도,소속돼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단체도 많이 없어 걱정이 커요.”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는 김보경 학생은 시각장애 학생 최초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입학한 재원입니다.현재 시각장애인 국악인으로 구성된‘전통예술단’예비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최근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는‘제9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경험이라고 수줍은 미소와 함께 자랑스러운 경험을 전했습니다.
원래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보경 학생은 중2때 접하게 된 국악 영상 속 맑고 애달픈 가야금 소리에 반해 전공을 바꿨다고 합니다.시각장애인 가야금 연주자로서‘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고 국악도로 성장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는데요,
그 일례로 대학 입시 때 초견(악보를 보고 처음부터 바로 부르거나 연주할 수 있는 능력)실기시험을 볼 때 적절한 지원을 받기 어려워 곤란을 겪은 경험을 나눴습니다.시각장애인이라 해당 악보를 읽을 방법이 점자나 누군가 음을 읽어줘서 연주하는 것 밖에 없어 해당 시험을 규정대로 치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요,여러 학교에 해당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요청해 봤지만 서울대학교에서만 유일하게 담당 교수님이 직접 답장을 주어 초견 시험을 보지 않는 대신 내신이나 생활기록부로 대체 평가하겠다고 해서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입학해서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른 친구들처럼 현장에서 악보를 보며 하지 못하니 미리 다 외워서 연주를 해야 하는 게 일상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럼에도‘최초’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만 내가 잘 해야 장애를 가진 다른 후배들이 조금은 덜 힘들게 입시의 문턱을 넘고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보경 학생은 입학의 문턱을 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졸업 후 제대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전했습니다.장애 국악인들이 활동할 무대도 많지 않고,소속되어 활동할 예술단도 거의 없어 아쉽다며 더 이런 현장의 어려움이 널리 알려져 하루빨리 개선되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국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고,전문적으로 가르침을 받기는 더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어서 이들에게 국악을 가르치고 싶어 현재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고아라 발레리나
“장애예술인들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장애인 관객들의 문화향유권 보장도 중요해요.
장애인들이 제대로 공연을 즐길 수 있게공연 환경이 바뀌어야 합니다.”
7살 때부터 취미로 발레를 시작해 현재20년 넘게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고아라 씨,그녀는 경희대 무용학과 출신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발레학교와 유니버설 발레단 부설 기관에서 발레를 배웠으며2018평창동계패럴림픽 폐막식 공연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프로인데요,현재 현대무용에까지 영역을 확장해 활약 중이라고 합니다.
고아라 씨는 어릴 때 말하는 것이 서툴러 오히려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이 더 좋았고,그래서 무용에 관심이 더 생겨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 있었는데요,특히 청력이 약하다 보니 음악에 맞춰 동작을 제대로 하는 것이 특히 힘들었다고 합니다.그래도 무용가의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원거리로 레슨을 다니며 발레리나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예술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과 학우들이 대신 필기를 해주거나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줘 감사한 학교생활을 보냈지만,무용가로서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커 대학원 재학 시절 방황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인생의 전환점이 된 몽골 여행을 통해“(내 앞의)길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슬럼프를 극복한 경험을 전했습니다.이런 값진 경험을 통해 예술가로서 꾸준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기를 단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무용을 하며 어려웠던 점으로 협업하는 과정에서 겪은 소통의 문제가 가장 컸다고 전했습니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어나 문자통역같이 개개인에게 맞는 지원이 필요하며,주변 동료들의 배려와 이해 또한 성공적인 협업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예술을 향유하는 장애인 관객 입장에서 갖고 있는 고민도 함께 전했는데요,장애인 할인으로 공연 티켓 예매할 수 있어 처음에는 좋았지만 자막과 같은 편의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공연을 제대로 관람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오히려 제값 다 내더라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장애인들이 문화향유권을 잘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방귀희 회장(한국장애예술인협회)
“장애인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서 가난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 그게 바로장애예술인지원법의 핵심이죠.
법이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장애계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합심해서 싸워주길 바랍니다!”
장애예술계의 대모라고 불리는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은30여 년 넘게 방송인으로 활약하며 한국 최초 장애인 문학지을 창간해 많은 장애인 문인을 배출하는데 힘쓴 주역입니다.그녀 자신도31권의 저서가 있는 작가이기도 한데요,특히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장애인1호 청와대 문화특보’에 발탁되었고,문화와 복지를 융합시킨‘문화복지’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 입지적 인물입니다.현재도 계간지를 발행하고 있으며,문화체육관광부 소속‘장애예술인문화예술활동지원위원회’초대 위원장을 맡아 장애예술인 지원을 위한 여러 정책적 제언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방귀희 회장은“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시작한다.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예술이다”라는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이 한 말을 인용하며,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예술을 통해 깨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다고 전했습니다.
BTS가 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K-POP의 위상을 높인 것처럼 장애예술인들이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쏟아 멋진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 자체가 관객(대중)이 가진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애예술에 대해 장애인 복지계와 문화예술계 양쪽 모두 무관심으로 일축하며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예술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서로 책임 떠넘기기 바빴다고 섭섭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문화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장애인들이 더 많이 늘고 안정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특히 작년1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장애예술인지원법,특히 가장 핵심이 되는9~11조가 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한 법률개정안*통과를 위해 장애계가 함께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장애예술인 예술활동 진흥사업과 활동을 지원할‘장애예술인진흥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기금설치 근거를 두는「국가재정법」 ▲재원 조성을 위해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있도록 하는「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개정안(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대표발의)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 약칭: 장애예술인지원법 ) 제9조(장애예술인의 창작활동 지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제10조(장애예술인의 참여 확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송, 영화, 출판, 전시, 공연 등 문화예술 활동에 장애예술인의 참여를 확대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11조(장애예술인 고용지원)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예술인의 고용촉진을 위하여 사업주 및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ㆍ홍보 및 장애인 인식개선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는 장애예술인을 고용하여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주에게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 |
그 밖에도 더 많은 대화들이 현장에서 오갔는데요,장애인이자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는12월26일(일)오후3시,복지TV채널에서 방영됩니다.본 영상은 유튜브‘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채널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2021년 제4회 장애인 아고라“경계를 허무는 예술,모두를 위한 무대”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시청 바랍니다.
※본 아고라를 시청한 소감이나 관련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하단에 댓글로 남겨주세요.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힘쓰겠습니다!
▶전체영상 다시보기:https://youtu.be/Ku4n7fDJJ4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