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은 1984년 준공되어 개통되었고, 같은 역 홍대입구역 방면 3-2번 승강장의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은 12cm이다. 원고 장OO은 2019. 4.30. 위 승강장에서 하차를 하던 중 휠체어의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에 끼는 사고를 당하였다.”
서울지하철 신촌역, 충무로역을 상대로 지하철 차량과 승강장 연단의 간격이 10cm를 넘거나 그 높이 차이가 1.5cm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 ‘장애인 승객의 사고를 방지하고 정당한 이동편의지원을 위한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하라고, 지난해 7월 서울교통공사(이하 교통공사)를 상대로 서울동부지방법원(이하 법원)에 차별구제 소송을 낸 이유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7월8일, 피고인 교통공사의 편을 들어 이 사건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생명과 안전에 관해서도 ‘소급’을 운운하나.
도시철도건설규칙(도시철도법 제18조에 따라 도시교통권역에 건설하는 도시철도의 건설기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의 위반 여부에 해당 법원은 ‘오래된’ 이 역사들은 소급 적용 대상이 아니며, 심지어 설계지침 시행 이후 개량 사실 주장에 대해서도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중증장애인의 본격적 이동권 투쟁의 시작을 알렸던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추락사건 이후에도 수많은 전철, 지하철 관련 사건사고와 희생, 그에 따른 뒤늦은 대응이 반복되어왔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일상의 이동에 있어서도 과연 ‘소급’을 운운하는 것이 법원과 교통공사의 역할일까.
누구에겐 12cm가 내딛기에도 무서운 절벽이란 걸.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았는가.
법률의 변화, 그 의미의 엄중함.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은 교통약자법 시행령 별표2를 준용하여 교통사업자가 제공하여야 하는 편의의 내용을 규정하면서도 원고들이 적극적 시정조치로 구하는 안전발판 등 설비는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정당한 편의제공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밝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장애인단체는 이미 수년 전 부터 교통시설과 여객시설 내 이동 및 이동편의시설 이용지원과 더불어 승하차지원 등 탑승보조서비스를 요구해왔으며, 이는 2020년 3월 12일 관련 법(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시행령,시행규칙의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승하차지원’이란, 차량과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나 높이의 차이 등을 해소하기 위한 시설제공 등 교통약자의 승하차를 도와주는 것으로, 이는 더 이상 이런 저런이유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지원해야하는 ‘필수’로의 개념 전환 시작을 의미한다.
‘정당함’이란 제공자가 아닌 ‘권리의 소비자’가 느끼는 것.
현행 장차법은 ‘현저히 곤란한 사정’과 ‘과도한 부담’이란 이중적 사유로, 장애인차별구제의 면죄부를 마련(동법 제4조제3항제1호)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도 법원은 충무로역에서 시행 중인 원스탑케어 서비스와 교통공사가 시행 중인 안전 승강장 위치안내 앱, 이동식 안전발판서비스 등을 들며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봤다.
도대체, 그 ‘정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매일 이용해야하는 전철에서 몇 정거장부터 긴장하며 전화하고, 내가 탄 차량의 고유번호 질문에 스스로 답변해야하고, 역마다 다른 안전승강장 위치에 낙담하며, 불안한 이동식 발판을 이용하기 위해 수십여분을 기다려야하는 서비스가. ‘정당’하다는 것인가.
‘정당함’이란 제공자의 면죄부가 아닌, 권리로서의 ‘서비스 소비자’가 느끼고 판단해야한다.
또 하나의 궤변, 원고측 주장의 왜곡.
아울러 법원은 판결문에서, 본 소송 청구내용만을 근거로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하는 것만’이 장애인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정당한 편의제공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이동식 안전발판을 이용한 서비스가 안전은 고사하고 편의를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제기한 소송 내용이 이런 해석을 불러올 수 있는가.
또한 ‘해외 사례에서도 이동식 안전발판서비스와 같이 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고 원고들이 주장했다고 했다. 판결문에서도 인용했듯이 발판개수가 부족하고,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해당역사에 전화로 연락해야만 하는 우리의 이동식 안전발판서비스와 그들의 그것을 비교는 해보았는가. 아니 제출한 자료를 살펴는 보았는가.
끝도 없는 ‘정당함’ 타령. 부끄러운 민낯.
법원은 설령 피고가 이 사건 지하철역 승강장 연단에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장차법 상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문에서, ‘2016년경 감사원이 자동안전발판의 안전성을 검증해야한다는 의견’에 따라 실제 설치에 나아가지 못한 점. 해당 역사에 고무발판설치시 위험과 안전상 우려 외 달리 설치할 사유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는 감사원의 의견이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교통약자에 대한 정당한 조치 의무와 차별 발생 판단에 근거 잣대로 해석될 수 있는 선례를 남길 것이며, 고무발판 이외의 추가적 시공기법에 대한 검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부끄러운 민낯으로 남을 것이다.
이 소송의 또다른 원고(전OO)는 ‘개인적으로 바퀴가 턱에 걸려 오르지 못하고 내 몸만 튕겨져 지하철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장애인들이 매일 숨어있는 단차를 넘나들다 결국 누군가 죽어야 국가가 나설 것인가!’라며 언론을 통해 울분을 토했다.
본 소송의 처음과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해당 원고와공익인권법재단공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함께 항소를 결정하고, 지난 7월27일 항소장을 접수했다.
장애인당사자와 단체, 언론, 국회까지 그 연대를 넓혀갈 것이다.
장애인에겐 일상의 목숨 건 사투(死鬪)
매일 희생자를 기다리는 지하철.
더 이상의 비극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