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 어려움·한의 이용 선호 … “지역사회 통합돌봄 가능한 의료체계 갖춰야”
장애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건강주치의제도가 하루빨리 안착되길 바라는 장애인들의 요구가 높다. 장애인의 만성질환과 주장애 관리를 위해 의사를 선정해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받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2018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1%도 채 이용하지 않고 의사들의 참여도 저조해 ‘유령’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장애계는 장애인의 경제적 부담완화, 의사 참여 유도, 서비스의 다양화, 이용 장애인 대상 확대, 다학제팀 운영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부터 4단계 시범사업을 경증장애인까지 확대하고 방문서비스의 횟수도 늘렸다. 또 장애인 건강에 큰 영향을 주는 치과 진료 활성화를 위해 치과주치의 시범사업도 전국으로 확대한다. 장애계는 반복되는 듯한 시범사업에 기대감이 점점 떨어지지만 장애인 건강을 위해 보다 전폭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적극 나서길 희망한다. 관련해서 장애인 건강 실태와 장애계의 입장에 기초해서 제도 개선 대안을 모색했다.
장애인건강주치의사업 대상이 경증 장애인으로 확대된 가운데 사업 활성화에 대한 장애계의 관심과 요구가 높다.
7일 김동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장애인의 이동 불편으로 병의원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택의료처럼 다학제 인력이 결합해 주치의제 서비스를 보완해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위원장은 “장애인의 주치의 선택권 확대 차원에서 선호도 높은 한의사 참여도 적극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애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는 “장애인의 건강한 삶을 도모하는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도가 4단계 시범사업을 통해 제대로 자리매김해 의료사각지대 해소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지역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통합돌봄 환경을 갖추기 위한 의료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만성질환관리 사각지대 = 장애인의 건강특성을 보면 비장애인에 비해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아 특이 주치의적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보건복지부가 4월 30일 발표한 ‘2023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장애인 중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84.8%이다. 평균 2.5개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질환별로는 고혈압 49.3%, 이상지혈증 27.6%, 당뇨병 25.1%, 골관절염 23.3%, 만성통증 15.8% 등이다.
30세 이상을 비교하면 장애인의 고혈압 유병률은 52.9%로 전체인구 34.8%보다 높았다. 당뇨병은 26.8%로 전체인구 14.8%보다 높았다. 장애인의 주관적 건강인식 중 ‘좋다’는 경우가 18.9%에 불과했다. 전체인구 36.2%보다 낮았다.
최근 1년 안에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미충족 의료서비스 경험’은 17.3%로 나타났다. 이유로는 이동불편이 36.5%, 경제적 이유가 27.8%로 나타났다.
장애인단체총연맹의 설명에 따르면 와상중증장애인은 와상형 휠체어를 이용하는데 장애인 콜택시 대부분 탑승을 거부해 병의원 이용을 위해 왕복 10만원 가까이 드는 사설 구급차를 이용한다. 신장장애인은 투석 후 근력 약화 및 어지러움증 등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어렵다. 장애인의 의료서비스 이용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동행서비스’와 방문진료의 필요성이 높아진다.
◆시범사업 개선됐지만 참여 저조= 올 2월부터 진행 중인 장애인 건강주치의 4단계 시범사업은 이전 시범사업보다 진일보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중증위주로 한정됐던 대상자가 일반건강관리부문에서 ‘만성질환 또는 장애로 인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경증 장애인’으로 확대됐다. 중증장애인 대상 방문 수가를 인상하고 횟수를 18회에서 24회로 확대했다. 주장애 관리 참여기관을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또는 발달장애인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상급종합병원의 주치의 참여를 가능토록 한 점도 좋아진 부분이다.
장애인건강주치의는 사업대상 장애인의 만성질환 또는 장애 관련 건강문제를 포괄적으로 평가하고 연간 관리계획을 수립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육과 상담은 매뉴얼에 따라 건강주치의가 1대1 대면으로 최소 10분 이상 제공한다.
내원이 어려운 경우 전화로 ‘환자상태’ ‘약물복용 여부’ ‘합병증 유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주치의가 재가로 방문해 교육하고 상담 그리고 간단한 검사와 처치 처방을 할 수 있다. 또 주치의 관리하에 간호사가 방문해 기본간호와 간단한 처치를 할 수 있다. 또 일반건강관리 또는 통합관리서비스에 참여하는 고혈압 당뇨병 환자에게 맞춤형 무료 검사를 제공한다.
◆다학제 협진체계, 장애인 선택권 강화해야 = 장애계는 시범사업이 활성화돼 장애인들의 건강생활을 누릴 수 있길 희망한다.
하지만 3월 말 기준 사업 등록 주치의는 699명이고 등록 장애인은 4121명 뿐이다. 3단계 등록주치의 590명, 2단계 439명, 1단계 250명 수준보다는 많아졌지만 265만명의 장애인인구를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홍보 부족 탓도 있지만 결국 이용 장애인들의 ‘좋다’는 입소문이 크게 났다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참여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호승희 국립재활원 재활연구 건강보험연구과장은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 수립과 현황과 과제'(보건복지포럼 4월호) 연구에서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치의 의사 등록 및 활동이 저조하고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의 수가 절대 부족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주치의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사회 노인들을 위한 의료돌봄통합 지원사업의 재택의료적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있는 곳으로 의료진이 찾아가 교육 상담 진료 처치 등을 진행하는데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이뤄 진행한다. 현재 진행 중인 지자체의 사례를 보면 이용 노인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다.
또한 장애인건강주치의 사업에 한의사의 참여 필요성도 나온다. 한의 장애인건강주치의 서비스 관련 조사연구는 많다. 2019년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평가 연구에서 74.3%가 ‘한의사 진료서비스 필요하다’고 답했다.
2021년 9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장애인 주치의 선택권 조사’에서 대상자 확대와 상급종합병원 의사를 선택하는 것 외 한의분야에 대한 선택권이 부여돼야 한다고 제기됐다. 2023년 12월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한의분야 장애인 건강관리의사 제도 도입 방안 연구’에서는 설문참여 장애인 91.0%가 한의 주치의 제도에 참여를 희망했고 92.3%가 한의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의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반면 한의사들의 참여 의견은 높다. 2018년 한의사의 장애인주치의제도에 참여 의견이 94.7%로 나왔다. 이러한 배경으로 장애인주치의 시범사업이 4차까지 진행되는 동안 한의계는 수차례 복지부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아직 한의 시범사업이 한번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2019년 10월, 2021년 6월, 2023년 10월 ‘한의사 장애인건강주치의 모형 확대방안’ 검토만 반복했다.
김석희 대한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정부는 의사 측과 진행 중인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의사 장애인주치의제도를 추진하기가 여의치 않다고 밝힌다”며 “의사 측의 참여가 저조해 생긴 문제가 한의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장애인의 선호도가 높고 일차의료에서 개인 맞춤형 진료 장점을 가지고 있는 한의사가 참여하는 사업을 별도로 추진하면 장애인건강주치의 사업이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