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정부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구체적인 계획 수립과 충분한 예산 확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장애인 탈시설’정책 추진현황을 살펴보면 이 두 가지가 미진하다.올해4년 차에 접어든 탈시설 정책,과연 현 정부가 자신들이 약속한 바를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최혜영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작년 한 해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은2,251명으로 탈시설 장애인 수843명보다2.7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지역별 현황을 살펴보면 전 지역에서 탈시설 장애인은 전년 대비 감소한 반면,대구·강원 등 일부 지역의 경우 시설입소 장애인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혜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탈시설 지원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2021년도 보건복지부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올해 정부 예산 계획 중 탈시설 예산으로 편성된 것은 딱 하나,그마저도 직접 지원이 아닌 지역사회 전환 지원센터 건립을 위한 연구용역비로2.7억 정도가 책정되었을 뿐이다.이는 장애인 시설 지원에 들어가는 전체 예산의0.05%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다.반면 시설 관련 예산은 최근3년 기준 매년 약300억씩 증가했으며,올해5,469억5,000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자립지원금과 주거지원 역시 수요 대비 턱없이 부족하며,지역별로 편차가 컸다.초기 정착금인 자립지원금의 경우,지난3년간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은 장애인 수는420명으로 퇴소 장애인의6.8%에 불과했다.지자체별 지원금 격차도 커서 서울과 충북 간800만 원 차이가 났다.주거 지원을 받은 경우도 퇴소장애인의16.5%에 그쳤다.세종과 충남은 자립지원금도 주거지원도 전무해 탈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정착에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 (참고:에이블뉴스(2021.02.17.), ‘“국정과제‘장애인 탈시설” 4년째 감감무소식’)
Ⓒ최혜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지역 간 편차가 발생하는 주원인으로 중앙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탈시설 로드맵이 없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오히려 중앙정부보다 서울시가 더 적극적으로 법적 근거와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 복지현장 혼란을 해소해 줄 것과 서울시와 복지부 간 시범사업 협력을 제안했으니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간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장애계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다.지난해9월 열린’제49회RI Korea재활대회’에서 발표한’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년)중간평가 결과에 따르면‘탈시설 및 주거지원 강화’에 대한 평가항목3개 중2개 항목(시설거주 장애인 자립생활 전환 지원체계 마련,새로운 거주서비스 유형 개발)에서1점~2점 초반대의 낙제점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5점 만점 기준).
ⓒ소셜포커스
작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지부진한 탈시설 정책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당시 박능후 보건복지부 전 장관은 탈시설 로드맵의 조속한 마련을 공언했다.하지만 아직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여파로 국내외 집단거주·의료시설에서의 집단 감염이 끊이지 않고 있다.동시에‘시설 안’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가26개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 결과,코로나19사망자 중 집단시설 거주자가 약4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해8월, CRPD 23차 세션에서 명확한 탈시설 지침을 제공해 전세계적으로 탈시설을 촉진하기로 결의했다.
시설중심의 정책에서 탈시설과 자립지원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부는 재난 상황이라는 특수성에 기반한 한시적 조치가 아닌,탈시설 정책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때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준비 없는 탈시설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거주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지역사회 인프라와 욕구 파악,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거주형태 구축 등 탈시설 준비과정부터 점검해야 한다.이후 지역사회 정착 및 자립 유지 단계 등 단계별,유형별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탈시설 정책 추진 약속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올해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임하기를 바란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혜영(chyoung41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