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동네 목욕탕, 주변 시장, 근처 마트에서 보인다면, 이상한가요?
“장애인 거주시설은 지역사회에 가까울수록, 작을수록 더 아름답다!”
선진국의 인권친화적 장애인 정책 등을 체험하며 갖게 된 이같은 생각으로, 우리나라에 첫 그룹홈 프로그램을 도입한 천노엘 신부
그룹홈을 시초로 지적, 자폐성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엠마우스 복지관을 설립하고, 무지개공동회라는 사회복지법인까지 설립한 천노엘 신부는 1999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 시상하는 ‘한국장애인인권상’ 단체부문(엠마우스복지관) 제1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1957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 아일랜드에서 출항하여 인천항까지, 선교 목적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천 신부는 이후 광주의 주택 2채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그룹홈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들은 대형시설에서 집단으로 격리돼 살아야한다’는 편견을 깨고, 비장애인과 지역사회 내에서 장애인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
광주의 한 단지 내, 장애인들은 천 신부와 목욕탕, 시장, 마트 등 지역 내 어느 곳이든 함께하지만, 어느 누구도 “집값이 떨어진다” “아이들 교육상 나쁘다” 등 불평어린 소리를 내뱉지 않는다. 오랜 시간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지원하고, 지역 주민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자립할 수 있도록 천노엘 신부와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일궈놓은 결실이다.
사회적응 훈련, 특수 교육, 직업 훈련을 받게 하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없애고자 지역 주민과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는 사회통합 운동도 전개한 천노엘 신부. 그가 도입한 그룹홈은 월곡동, 운암동, 월산동 등 광주 전역으로 확산됐고, 현재는 전국 750여 개 그룹홈, 3000여 명의 장애인들이 이웃주민으로, 비장애인들과 더불어함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매년 추석이면 지적장애인 소녀의 묘지를 방문하는 천노엘 신부, “사회를 용서해주시렵니까?”
1979년 가을, 연고도 없이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소녀. 천노엘 신부는 40여년 간 지적장애인 소녀의 무덤을 매년 방문한다.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부하면 장례를 대신 치러 주겠다”
소녀가 사망했던 당시 한 병원은, 소녀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하면 장례를 대신 치러주겠다며 시신 기증을 제안했다. 이 날, 사회의 잘못된 시각에 가히 큰 충격을 받은 천 신부는 병원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뭐가 그리 감사하단건지 임종 직전까지 해맑은 얼굴로 연신 ‘감사합니다’를 되뇌었던 소녀에게, 19년 간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 한번 받지 못 하고 떠난 소녀에게, 지금이라도 인간다운 대우를 해줘야겠단 생각에 병원의 제안을 거절하고, 소녀의 시신을 천주교회 묘지에 안치한 천 신부.
소녀의 죽음을 통해 천 신부는 소녀의 무덤 앞에 “사회를 용서해주시렵니까?”란 묘비명을 새기며, 그렇게 장애인을 위한 특수 사목(본당이 아닌 특정 단체에서 특정 직분으로 신자들을 보살피는 일)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푸른 눈의 천노엘 신부, 장애인들의 대부로 기억되고 싶다!
현재 천노엘 신부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대표이사로서 9개의 시설을 운영·관리하며, 지적장애인 4명과 함께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신부는 전화 인터뷰에서 “정책이나 복지면에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장애인 인권에 있어서는 나아진 것이 거의 없다”며 최근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그룹홈 친구들 중 운동신경이 뛰어나 배드민턴을 곧잘 치는 친구 두 명이 있는데 동네 배드민턴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을 했더니 장애인이라고 거절당했다는 이야기였다. 모집된 회원 그 누구보다 뛰어날 거라 장담하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한 경험에,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이 존재함을 통감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가면 휠체어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 식당에는 다운증후군 장애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법적 규제를 통해서라도 ‘시각장애인 체험’ ‘휠체어 타보기 체험’과 같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체험부터가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통화 말미, 천 신부는 장애인 인식개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대우를 위한 법적 장치에 대해 정치인들이 좀 더 관심을 갖고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에 덧붙여 이를 위해 자신 또한 지난 60여년 한국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아간 것처럼 마지막 날까지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며, ‘발달장애인들의 대부’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추었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세상 만들기” 천노엘 신부님 차차세 챌린지 참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