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 4개의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정의당 장혜영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최혜영 국회의원, 국민의힘 이종성 국회의원 등 여·야 없이 모든 정당에서 법안을 발의해 장애인복지 체계를 바꿀 중대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처음 발의된 게 2021년 9월이고, 2022년 4월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아직까지 제정 움직임 없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21대 국회 임기도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과연 이번에는 제정될 수 있을까?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3개 법안 발의 후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 전례가 있기 때문에 21대 국회에 귀추가 주목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과연 제정될 수 있을까?
장애인권리보장법 진행단계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단계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국회 법 제정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법률안 제출
우리나라 법률안은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제출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10명 이상의 동료의원의 찬성을 받아 제출할 수 있고, 정부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제출할 수 있다.
2)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법률안은 해당하는 상임위원회에 제출된다. 보건복지위원회, 문화체육관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등 국회에는 20개의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국회 소관 위원회는 법률안을 상정하고, 전문위원이 검토·보고하며, 대체토론, 소위원회 심사, 축조심사, 찬반 토론, 표결의 순서로 심사가 진행된다.
3)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상임위원회에서 넘어온 법률안에 대해 법률 체계, 형식 및 자구상의 문제는 없는지 심사를 실시한다.
4) 국회 본회의 심의
법사위 심사가 끝나면 국회 본회의로 넘어간다.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까지는 20명 내외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하지만 본회의에는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대상이다.
법률안 상정, 심사보고, 질의토론을 거쳐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이 출석하여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5) 정부 이송 및 공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은 정부로 이송된다. 정부는 대개 15일 이내에 공포하지만 만약 대통령이 이의가 있으면 이의서를 붙여 국회에 재의(재의논)를 요구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5개의 단계 중 장애인권리보장법은 2단계에 해당하는 ‘상임위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흔히 ‘계류중’이라고 한다.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토론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왜 일까? 여·야의 입장차가 분명한 지점들이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 발목잡은 원인 ‘탈시설’
가장 큰 원인은 탈시설에 대한 시각차이다.
장혜영·최혜영 국회의원은 「탈시설지원법」을 별도로 발의할만큼 탈시설을 지지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지난 9월 제정된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보면 탈시설은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인 추세이고 우리나라도 그에 걸맞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애인거주시설과 정신요양시설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10년 내에 폐쇄를 원칙으로 차근차근 준비해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종성 국회의원은 탈시설이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지역사회 자립 및 정착지원법」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립기반 조성이 먼저라고 보고 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은 원칙이지만 시설 거주를 선택할 권리, 주거 등 자립지원서비스를 구축한 후 준비된 탈시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1년 8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4년까지 3년 동안 시범사업을 실시해 탈시설 및 자립지원 기반 여건을 조성하고,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매해 740여 명의 자립을 지원해 2041년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사회 전환까지 20년이 걸리는 장기 계획이다.
서로 간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고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지원주택 등 주거와 복지서비스를 결합한 주거 형태를 확대하고, 장애인주거지원센터를 개설하여 장애유형에 맞는 집을 찾고 편의시설 등 환경 개선, 이사 지원 및 주택 내 거주할 수 있는 유지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주거서비스에 대한 지원부터 확대하며 논의를 좁혀가야 한다.
먹고살 권리의 보장 ‘장애인표준소득’
많은 장애인들의 주된 고민은 경제적 문제다. 장애로 인해 일정한 학력수준을 갖춰 취업하기 어렵고, 창업이나 자영업의 환경 또한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 이후 줄곧 장애인들이 국가나 사회에 바라는 것은 ‘소득보장’이지만, 장애인연금이 도입될 때도 1천원 인상,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애수당 등의 소득보장제도는 장애인의 생계를 책임지기에 미미한 수준이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1.6%의 장애인이 장애 때문에 추가비용이 든다고 했다. 의료비, 교통비, 보호·간병비, 보조기기 구입·유지비 등 비장애인보다 추가로 비용이 들고 그 금액이 월 평균 15만 2,600원에 달한다. 장애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20만 1천원까지 추가비용이 올라간다.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들지 않았을 비용이 장애 때문에 더 들지만 벌이는 넉넉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고민은 깊다.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장애인은 국가가 보호해준다는 헌법 조항은 공허로울 뿐이다.
장애인들의 절실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장혜영·최혜영 국회의원은 장애인권리보장법에 ‘장애인표준소득’ 신설을 제안했다. 현재의 세금 감면과 장애인연금 및 장애수당 외에 장애인의 기본생계를 지원하고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을 보전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매년 장애인표준소득보장금액을 정해 그만큼 보전해주면 장애인의 삶이 나아진다는 진단인데 김민석 국회의원과 이종성 국회의원(안)에는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도입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장애인권리보장법 특단의 권리구제방안 ‘단체소송’
장애인권리보장법의 가장 큰 특징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애인의 권리가 명시되고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구제방안이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권리구제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단체소송에 대해 장혜영·최혜영 국회의원은 주장하고 있지만, 김민석·이종성 국회의원은 반영하고 있지 않다.
다수의 장애인의 권익에 해가 된다면 개인이 일일이 소송을 제기하여 개인만 피해보상을 받기보다는 권한을 위임받은 단체가 대신 소송을 제기하여 다수의 권익을 구제하는 방안이 단체소송이다. 하지만 아직은 도입 여부를 확언할 수 없다.
장애인복지법의 한계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10년 이상 무르익었다. 21대 국회에서마저 통과되지 않는다면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영영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작성자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남궁 은 책임